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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호텔, 징시빈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4-22 10:49
조회수
372

 

 10월26일, 중국 공산당 18기 5중전회(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다. 18기 중국 공산당을 구성하는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체회의가 5번째 열린다는 뜻이다.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는 곳은 인민대회당이 아니다. 베이징 도심을 관통하는 창안가 서쪽 끝자락에 있는 징시(京西)빈관에서 열린다. 빈관은 중국어로 호텔이라는 뜻이다.

 

 

 

징시빈관은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 국회의사당격인 인민대회당은 입장권만 사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 외국 국가원수가 중국을 방문하면 묵는 조어대 국빈관도 외부인사가 예약을 하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외부인이나 외국인에게 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 곳이 징시빈관이다.

 

 

 

이 곳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문패는 있지만 간판은 없다. 징시빈관에 가보면 정문에 양팡뎬(羊坊店) 1호라는 주소를 담은 문패는 있다. 하지만 호텔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외부에 개방을 하지 않는 만큼 굳이 외부에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징시빈관에 대한 정식 명칭은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관리보장부 경서빈관 관리국이다. 군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호텔 최고 책임자는 해방군 정사(正師)급 단위(일반 행정기관으로 치면 국장급), 그러니까 사단장급(대교. 우리나라로 치면 대령과 준장 사이)이라는 뜻이다. 외부 인사 출입을 막고 있어 중국 사람들에게 신비스럽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실제로 안에 들어가보면 인민대회당 내부장식과 흡사하다. 복도에는 붉은 색 카핏이 깔려 있다. 건물 곳곳에 해방군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호텔 건물은 숙박을 하는 건물 2동과 회의동, 모두 3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곳은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이 또하나의 특징이다. 회의 초청장이 없으면 신분증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경비가 아주 철저하다. 일하는 종업원들은 처음 출범할 때만해도 해방군 병사들과 베이징 출신의 일반인 직원들만 채용했다. 나중에는 외지 출신 직원들도 채용하는 것으로 느슨해지기는 했지만 직원들은 반드시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야 한다. 직원 본인과 가족들의 성향을 담은 당안(학력이나 전과 기록, 정치적 성향을 담고 있는 일종의 신원 기록부. 중국에서 웬만한 직장에 취직을 하려면 반드시 당안을 내야 한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평생 따라다닌다)을 반드시 내야 한다. 본인이나 가족 가운데 기율 위반이나 법률 위반과 같은 전과기록이 전혀 없어야 한다. 현재 징시빈관은 별다섯개 최고급 호텔과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외부 기관의 평가를 받지 않고 있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징시빈관은 가장 안전한 호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리와 보안 수준이 지도부 사무실과 숙소가 있는 중남해를 비롯해 인민대회당, 조어대 국빈관과 같은 최고 등급이다. 그동안 한 번도 기밀 누설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징시빈관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각급 회의를 위해 시설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호텔 로비에 보안 검사 장치를 마련한 것 외에 각 회의실마다 일련의 보안 시설을 마련했다.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일부 고위급 회의는 입구에 휴대전화 보관함을 마련해 참석자들이 반드시 휴대전화를 맡기도록 하고 있다. 무선 전신 신호를 차단해 외부로 회의 내용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막고 있다.

 

 

 


호텔 안에 회의실이 많은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원래 회의를 열기 위해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13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대강당이 1개가 있다. 각종 회의실은 모두 70개를 넘는다. 징시빈관은 해마다 적어도 200회 이상의 회의를 열고 있다. 거의 날마다 회의가 열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회의장의 으뜸으로 꼽힌다. 1964년부터 2004년까지 40년 동안 44차례 당대회와 중앙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29차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대표단(줄여서 전국양회라고 부른다)의 숙소와 분임 토론장으로 쓰였다. 우선 순위를 보면 당 관련 회의가 가장 중요하고, 이어 국무원 회의, 군대 회의 순으로 중요도를 따진다.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가 열리는 것은 물론 전국 양회 대표단 숙소로 쓰이고, 지도부의 접견 행사도 자주 열린다. 지난해 중앙민족공작회의, 군중노선활동 결산대회, 지난 1월 시진핑 주석의 전국외사공작회의 및 제16차 무관공작회의 대표 접견이 모두 징시빈관에서 열렸다. 추모활동도 열리기도 한다. 2006년 8월7일,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공급으로 사망한 두자오위에 대한 추도대회를 연 곳도 바로 징시빈관 대강당이었다.

 

 

1978년 12월 열려 개혁개방을 선언한 중국 공산당 11기3중 전회도 징시빈관에서 열렸다. 당시 접대를 맡았던 호텔 종업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도자들이 물을 마시던 컵에는 일련번호가 1부터 44까지 매겨져 있었다. 컵 바닥에 붉은칠로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덩샤오핑은 전용 번호가 12번, 예젠잉 원수는 3번이었다. 당시 컵은 백자로 꽃무늬는 전혀 없어 소박했다. 덩샤오핑은 특히 회의 때 물을 많이 마셨다. 종업원들은 규정에 따라 2시간 회의에 20분 마다 한번씩 컵에 물을 따라 주곤 했다. 매번 덩샤오핑의 컵은 물이 비어있었다. 연설을 많이 하다 보니 물을 많이 마셨던 것이다. 당시 지도자들이 사용했던 컵, 앉았던 의자, 전체 회의장은 지금도 원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회의실 벽에는 자력갱생, 간고분투라는 8글자가 걸려 있다.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가 진압된 직후 소집한 중국 공산당 13기 4중전회도 징시빈관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상하이 시당서기 장쩌민을 총서기로 뽑고 정식으로 제3세대 집단지도체제가 출범했다. 그해 11월, 13기5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은 중앙군사위 주석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덩샤오핑 제의에 따라 장쩌민 총서기를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결정했다. 13기 5중전회가 끝난지 사흘 뒤 덩샤오핑은 신임 중앙군사위 주석 장쩌민과 함께 징시빈관에 와서 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참석자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덩샤오핑은 장쩌민 동지를 당 중앙 핵심으로 확정한 것은 정확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그가 합격점을 받은 당 총서기인 만큼 군사위 주석도 잘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징시호텔 방(2004년 기준)은 모두 1023개이다. 스탠더드 룸은 955개, 스위트룸은 68개로 베드수는 1978개이다. 식당은 대형, 중형, 소형 식당을 합쳐 40개가 넘는다. 동시에 2000명이 식사를 할 수 있다. 2004년 기준으로 요리사는 196명. 종업원은 1007명이다. 호텔이 제공하는 중국 음식은 메인 디시(더운 음식)가 14종, 냉채가 12종, 주식은 18종이다. 3일 동안 같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을 정도로 음식 가짓수가 많다



출처: https://inpyohong.khan.kr/292 [차이나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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